미·중 우주개발 경쟁 속, 한국의 라그랑주 포인트와 시스루나 개발 기회

  • 기사입력 2024.02.26 09:15
  • 기자명 박시수 우주산업 전문기자
지구 주변 라그랑주 포인트를 보여주는 이미지.
지구 주변 라그랑주 포인트를 보여주는 이미지.

 

[산경투데이 = 박시수 우주산업 전문기자]

미국과 중국 간 우주개발 경쟁이 지구 궤도를 넘어 달과 심우주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라그랑주 포인트(Lagrange points)가 최근 크게 주목받고 있다.

미국 하원은 지난 12월 보고서에서 “중국의 우주 굴기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이 가장 먼저 모든 라그랑주 포인트에 전략 자산을 신속히 배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 우주항공 싱크탱크인 미첼항공우주연구소는 1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라그랑주 포인트를 비롯한 심우주 공간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미군과 NASA가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의회가 별도의 예산을 책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중국도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2018년 5월 달 후면을 마주보는 라그랑주 2 포인트에 통신 중계위성 ‘퀘차오’(Queqiao)를 배치하며 라그랑주 개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라그랑주 2 포인트에 배치될 두 번째 퀘차오 위성은 오는 3월 발사될 예정으로, 중국은 이 지점에 다수의 퀘차오 위성을 추가로 발사해 지구와 달을 연결하는 통신·관측·항법 군집위성을 구축할 계획이다.

나머지 라그랑주 포인트에 전략 자산을 배치하기 위한 준비도 시작됐다. 

라그랑주 포인트란? 

지구 주변 라그랑주 포인트를 보여주는 이미지.
지구 주변 라그랑주 포인트를 보여주는 이미지.

 

라그랑주 포인트는 18세기 말,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조제프루이 라그랑주(Joseph Louis Lagrange)가 발견하여 그의 이름을 땄다. 두 개의 큰 천체가 끌어당기는 중력이 작은 물체가 함께 움직이는 데 필요한 구심력과 정확하게 일치하여 실질적으로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는 평형점을 말한다.

지구와 달, 지구와 태양, 태양과 목성 등 각각의 천체 사이에는 각각의 라그랑주 포인트가 존재한다. 두 천체 간의 라그랑주 포인트는 총 5개가 존재한다. 이곳에 인공위성과 같은 우주 자산을 배치하면 연료를 많이 쓰지 않고도 오랜 기간 안정적인 궤도를 유지하며 사용할 수 있다. 라그랑주 포인트가 ‘우주 속 주차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때문에 라그랑주 포인트는 과학적 연구뿐만 아니라 관측, 감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다.

태양-지구 시스템에서 가장 가까운 라그랑주 포인트는 제1 라그랑주 포인트(L1)와 제2 라그랑주 포인트(L2)이다.

L1은 지구에서 태양 쪽에, L2는 지구 그림자 쪽에 있다. 두 지점 모두 지구에서 약 150만km 떨어져 있다. 지구-달 거리의 4배에 해당하는 거리다.

제3 라그랑주 포인트(L3)은 태양 반대쪽 방향으로 거의 태양-지구 거리만큼 떨어진 거리에 있다. 따라서 지구에서 보면 태양-지구 거리의 2배 되는 곳에 있다.

제4, 제5 라그랑주 포인트(L4와 L5)는 정확하게 태양-지구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태양과 지구, 라그랑주 포인트가 정확히 정삼각형을 이룬다. 지구 공전 궤도에서 볼 때 L4는 지구 앞쪽에, L5는 지구 뒤쪽에 위치한다.

“L1과 L2를 선점하라” 

작년 12월 미국 하원 산하 소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좌측)과 올해 1월 미국 우주항공 싱크탱크인 미첼항공우주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 표지. 두 보고서 모두 빠른 라그랑주 포인트, 시스루나 공간 개발을 촉구했다. 
작년 12월 미국 하원 산하 소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좌측)과 올해 1월 미국 우주항공 싱크탱크인 미첼항공우주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 표지. 두 보고서 모두 빠른 라그랑주 포인트, 시스루나 공간 개발을 촉구했다. 

 

미국의 최우선 관심사는 L1과 L2이다.

우선 미국이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필두로 개발을 위해 공들이고 있는 달과 가장 가깝다. 특히 지구와 달 사이에 위치한 L1은 두 천체 사이에 머물거나 통과하는 자연 및 인공물체를 관찰하고 추적하는 우주상황인식(SSA) 활동을 안정적이고 장시간 지속할 수 있는 이상적인 위치다.

같은 이유로 지구와 달을 연결하는 통신 중계 위성을 배치하기도 좋은 위치이다. 때문에 과거 태양과 우주환경을 조사하는 탐사선이 주로 발사됐던 L1은 현재 우주상황인식과 통신이라는 전략 자산의 목적지로 떠오르고 있다. 

미 우주군은 L2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달 뒷면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달 뒷면은 우주탐사에 있어 미국이 중국에 뒤처져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미국은 아직 달 뒷면에 탐사선을 보내지 못했다. 반면 중국의 무인 달 탐사선 창어-4호는 2019년 1월 세계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했다. 그리고 달 뒷면의 토양 샘플을 지구로 가져올 창어-6호 올해 하반기 발사될 예정이다. 이곳에서 중국의 탐사선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 미국에게 L2는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해줄 ‘관측소’를 세우기 가장 좋은 위치다.

지구에서 고성능 망원경을 이용해 달 뒷면을 관찰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달은 자전의 속도가 공전주기와 1대1로 동일해서 지구에서는 항상 달의 한 면만 볼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지구에서는 달의 앞면만 볼 수 있고 뒷면은 볼 수 없다.

미국이 전략적으로 L1와 L2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또 있다. 천체 역학(astrodynamics) 전문가들에 따르면 L1와 L2에 배치된 우주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적은 연료를 사용해 지구와 달 사이에 어디든 쉽고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5분 대기조’ 같이 특정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는데 필요한 자산을 배치하기 좋은 공간이다. 

중장기적으로는 L4와 L5의 전략적 가치도 커질 전망이다. 두 지점은 지구와의 거리는 상대적으로 멀지만, 지구와 달 사이 공간(시스루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지구와 달 사이를 오가는 우주선의 안전한 비행에 필요한 위치(P), 항법(N), 시간(T) 정보를 제공하는 우주 시스템이 배치되기 좋은 위치다.

“문제는 예산” 

미 우주군 예산 전망(2024년-2028년) / Comprehensive Strategy for the Space Force (Aug. 2023)
미 우주군 예산 전망(2024년-2028년) / Comprehensive Strategy for the Space Force (Aug. 2023)

 

라그랑주 포인트의 높은 전략적 가치와 관심에도 불구하고 관련 자산에 대한 미국 정부의 투자는 지지부진하다. 문제는 예산이다. 코로나발 인플레이션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 정부는 올해 우주와 관련된 대부분의 예산을 동결하거나 삭감했다. 그 결과 그동안 추진되어온 미션의 일부도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 

미 우주항공 싱크탱크인 미첼항공우주연구소는 1월 17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미군은 NASA와 협력을 통해 지구와 달 사이 공간(시스루나)에 배치할 인프라를 적극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우주영역인식(SSA)과 고대역폭(high bandwith) 통신, 위성항법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며, 국방부는 우주군에 시스루나 개발에 사용할 예산 2억 5,000만 달러를 매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보고서는 “제시된 금액은 현재 상황에 기초해 추산한 것”이라며 “만약 심우주 개발에서 미국이 중국을 추격하는 상황이 되면 그때 필요한 예산은 이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경고에도 필요한 예산 확보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작년 8월 미 공군부(Department of the Air Force)가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 우주군의 예산은 2024년부터 2026년까지 서서히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 기회 될까?

미국의 이러한 상황은 한국 우주개발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미국은 라그랑주 포인트와 시스루나 개발을 아르테미스 프로그램과 동일하게 '국제협력'이라는 틀 안에서 추진하려고 한다. 투입되는 자금과 자원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협력은 미국과 뜻을 함께하는(like-minded) 국가 및 기관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입장에서 기회인 것은 라그랑주 포인트와 시스루나 개발과 관련된 국제협력의 틀과 참여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의지에 따라 협력의 틀 안에 상대적을 쉽게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한국은 달 궤도선 ‘다누리’ 프로젝트를 통해 우주 시스템을 L1에 보내는 기술과 경험 그리고 노하우를 확보했다. 이러한 기술과 경험은 미국과 유럽, 중국, 러시아, 인도 등 극소수 국가만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몸값을 올려주는 자산이다.

마지막으로 라그랑주 포인트와 시스루나 개발은 아르테미스 프로그램과 연결점이 생길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아르테미스에서 의미 있는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한국에게 숨겨왔던 여분의 탑승권이 주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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